인터뷰 : 폴인




1.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다 매장을 열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매장 운영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포토그래퍼로 처음 취업할 때 받았던 질문이 기억나요.
실장님이 저에게 사진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으셨는데 제가 서비스업 같다고 말했어요.
제가 찍은 사진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점을 보면 서비스 마인드가 유달리 있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장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  2012년 성균관대 앞에 문을 연 '인생의 단맛'이 첫 공간이죠. 어떻게 문을 열게 되셨는지요. 왜 칵테일 바였나요?
처음에는 뚝배기된장바지락칼국수였어요. 그다음에는 고로케(푸드 트럭). 여러 아이템을 준비하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제주도 모슬포 바다를 칵테일로 만들어 봤는데 무척 재밌었어요. 단숨에 칵테일 이름을 100개 정도 짓고 창의적 칵테일을 만드는 바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재밌게 풀어내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에는 술집을 한다고 하면 안 좋게 보던 시절이었어요. 제가 술을 마시지 않던 시절인데 여기까지 온 것 보면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3. 인생의 단맛 이후 '독일주택' '수도원' 등을 연이어 창업하고, 2017년 주식회사 현현을 설립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인생의 단맛을 개업하고 창의적 칵테일을 만들다가 공간도 이렇게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으로 함께 일했던 직원과 108개의 각기 다른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약속했습니다.


4. "일로 작은 성취를 느끼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고요. 대표님께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은 어떤 성취를 가져다주나요?
제가 장사를 통해서 얻었던 작은 성취는 경제적인 자립이었어요.
이 일을 통해서 내일이 오늘보다 낫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런 희망이 움튼 사람은 변할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공간에 관한 성취는 저희가 만든 공간이 누군가에게 중요한 공간이 되었을때 입니다.
재밌는건 공간도 생물 같아서 저희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 매장을 오픈하기 전에는, 끊임없이 방황하고 헤매는 느낌이었다고 하신 말씀도 인상깊습니다. 대표님께 '공간을 만드는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응답하기에 가까운 일 같습니다.
대게는 우연히 재밌는 공간을 발견하거나 일로써 의뢰가 들어와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공간이나 장소가 가진 것들, 의뢰인이 가진 것들과 상황. 당시에 우리의 관심사와 질문이 모여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처지와 우연의 만남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5. 현현은 서비스업 회사입니다.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자'가 현현의 모토인데요. 왜 공간이 아닌 '서비스'에 집중하시나요? 이런 모토를 만들게 된 이유는요.
세상에 부족한 건 하드웨어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멋진 공간도 새로운 기술도 무엇 때문에 필요한 걸까요?
얼마 전에 회사會社와 사회社會의 한자를 찾아봤는데요, 순서만 다르지 같은 글자더라고요.
결국 좋은 회사나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건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느낌이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고 할 일을 던져준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대목과 연결될까요?

연결되는 것 같아요.

  • 어떤 서비스들을 하고 계신지 소개부탁드립니다. (일부 매장 중심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현현에서 운영하는 모든 매장에는 OMS(One More Service)를 시행해요.
매뉴얼에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스탭이 손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주체적으로 행하는 서비스입니다.
예를 들면 매장이 오픈 전인데 손님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면 문을 일찍 열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릴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데 우산이 없는 손님이 있다면 매장의 우산을 빌려 드리는 겁니다.
유모차를 가지고 바 앞에서 망설이는 분에게 다가가서 매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겁니다.
에어컨을 틀었는데 어떤 손님은 더워하고 어떤 손님은 추워한다면, 담요를 이용하기도 하고 손님의 자리를 에어컨 근처로 옮겨 드리기도 하는 겁니다.
직원들이 매일 퇴근 전에 쓰는 OMS를 보다 보면 그 창의성과 정성에 감동할 때가 많습니다.


6. 성수동이나 한남동 등 소위 '핫한 지역'에 매장을 내지 않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오픈 장소를 고를 때 고려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권리금이나 높은 임대료가 부담스러워서도 있겠지만 저희는 비어져 있거나 잘 활용되지 않는 곳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곳을 보면 아이디어가 나는 편이에요. 여기서 무엇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라고 상상하는 일이 재밌어요.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매장 자체보다 장소성이에요. 이곳이 내 가게가 아니더라도 매력이 있는 곳인가?

  • 평소 서울의 방치된 공간들을 일부러 둘러보시나요? "좋은 기운을 가진 공간을 둘러본다, 상권 개념 이전에 동네, 골목, 장소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보려고 한다" "복원 사업하듯 접근, 계약하고 나서 한달 정도는 공간을 그대로 둔다"는 말씀이 인상깊습니다.

일부러 방치된 곳을 둘러보러 다니지는 않지만 산책하기 좋은 장소는 한적한 곳이긴 한 것 같아요.
저희가 새로운 매장을 구할 때는 아무런 목적성을 가지지 않고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지역을 둘러봅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하면 여기서 무엇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장사가 될까? 어떤 상호가 어울릴까? 하고 역으로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몇 번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공간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좋은 공간을 발견하면 이곳에 더 어울리는 무엇이 새롭게 떠올랐어요.
처음에는 직관적으로 공간의 매력에 이끌려 계약을 하지만 무엇을 할지는 여러 번 가봐야지만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그곳에서 발견한 것, 어울리는 것, 새롭게 떠오르는 것들을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만들어 나가기에 그 과정이 복원 사업과 비슷해요.

  • 그렇게 기획한 공간에 대한 히스토리 한두 개를 소개해 주신다면요.

법원이 떠오르네요.
우연히 계동에서 30년 동안 한정식집으로 운영되다 문을 닫은 곳은 보게 되었는데 구조가 재밌는 거예요. 일본식 다다미방 형태로 되어 있었거든요.
이유를 물어보니 인근 현대 사옥 손님들이 식사할 때만이라도 상사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드시라고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코로나 시절이기도 해서 이 폐쇄형 구조를 활용해서 bar가 없는 bar를 만들게 되었어요.
예전에 단골손님에게 버번위스키를 서비스로 내어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요즘 법원에서는 위스키도 만들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말이 재밌어서 머릿속 한켠에 저장해 두었는데, 이곳의 상호가 우원(友源)이고 근처에 헌법재판소가 있어서 상호를 법원(Bourbon)이라 짓고 버번위스키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를 열게 되었습니다.



7. '텅 비어 있는 삶'과 '오무사' '법원' 등 작명 센스도 남다르신 듯합니다. 대표님의 결혼식 축사에 관한 글 중에 "결혼은 삶처럼 모든 가능성에 열려있는 텅 비어있는 상태"라는 대목을 읽고는 대표님의 생각을 반영한 공간인가 추측해보기도 했어요. 어쩌면 매장 이름이 공간 기획의 단초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각 공간의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또 어떻게 공간 기획과 연결되나요?
이름 짓는 일을 좋아해요. 제 에버노트에는 상호를 적어 놓은 노트가 따로 있는데요. 거기에는 수많은 상호들이 적혀있습니다. 저는 어떤 문장이나 단어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고요. 뭔가 재밌는 공간을 만나게 되면 그동안 지어 두었던 이름을 꺼내 보거나 좀 더 어울리는 이름을 새로 짓는 편입니다. 한글은 뉘앙스를 표현하기가 쉬운데 영어는 그렇지 못해서 주로 한글 상호를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름을 지을 때 공간과 제공하는 서비스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가능하면 유머도 담을 수 있다면 좋고요.


8. 공간은 직접 기획하시나요? 아니면 다른 회사와 협업하시는지요.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기획부터 메뉴판까지 매장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저희 회사에서 직접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 업체와 협업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9. 공간을 기획할 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장소성과 고유성입니다.



10. 매장의 성공 여부는 90%가 운영이라고요. 현현의 공간에서 '운영'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그동안 쌓아온 운영 노하우 중 하나를 공유해주신다면요.


"작은 매장은 운영만 잘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운영을 모르는 사장은 필패합니다."

수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한 가지만 말해 본다면
'가게에 오는 어떠한 손님도 서운하게 보내지 않는다'
이 약속만 지킬 수 있으면 아무리 소자본  창업이어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건 친절함은 아무리 사용해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장사를 하면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많은 사장님이 자신의 가게를 찾아준 손님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내가 잘해서 오는 거니까 당연하다거나, 별생각이 없거나, 심지어 흉을 보거나 다투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늘에 별처럼 많은 가게 중에 내 가게를 찾아준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 아닌가요?
게다가 나에게 돈을 쓰러 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친절하거나 무신경할 수 있는지.
저는 한 번도 손님을 진상이라고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설사 그렇게 느낀 적은 더러 있었어도 그 단어를 사람들 앞에서 내뱉은 적은 없어요.
이상한 손님은 흘려보내면 그만이에요. 저희 회사의 업무 매뉴얼에도 매장에서 손님 뒷담화하지 않기가 있어요.
손님이 듣는 건 둘째치고 그런 태도로는 좋은 가게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알듯이 손님은 왕이 아니에요. 나에게 돈을 쓰려고 와준 고마운 귀인 일 뿐입니다.



11. "명분이 없는 일은 고난에 취약하다"고 하셨습니다. 대표님이 공간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의 명분은 무엇인가요?
필로소피라운지 작업을 하다가 불이 난 적 있어요. 빠르게 수습해서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오래된 건물이 많은 곳이라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어요. 그때 떠오른 생각이에요.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든 이미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공간을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주변에 불편을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꼭 납득할 명분을 찾으려고 해요.
이게 정말 세상에 필요한 일인가. 제한적인 에너지와 재화를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12. 최근 오픈한 필로소피라운지는 '사색과 대화를 위한 라운지'입니다. 평소 오래 이런 공간을 품어오셨다고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경제적 이유로 동생이랑 오래 살았어요. 그래서 대개는 거실도 방의 확장된 공간으로 사용됐는데 혼자서 살 게 되면서 뚜렷한 목적이 없는 공간을 처음 갖게 되었습니다.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필요를 몰랐던 공간이 생기니 우선은 비워 두었어요. 집안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있다는 느낌이 좋아서 필로소피라운지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좋은 의자를 하나 사서 사색하는 공간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공간에 빛과 음악을 추가했고, 분위기가 좋아서 누군가를 집에 초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개는 밖에서 식사를 하거나 1차를 하고 저희 집에서는 위스키에 간단한 디저트나 과일을 먹었는데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거실은 사색을 하기에도 대화를 하기에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13. '두루미'같은 경우는 입구가 숨겨져 있고, 내부가 매우 단정한 느낌이 들었어요. 현현의 공간들은 모두 '담백하다'는 인상이 드는데요. 핫플과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이 넘쳐나는 지금, 대표님이 추구하는 공간에 대한 철학이 궁금합니다. 어떤 공간이 오래 살아남을까요?
대학로에는 학림다방과 도어즈라는 오래된 가게가 있는데요. 한 곳은 실제로 서울문화유산이고 한 곳은 제가 밤의 서울문화유산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두 곳의 공통점은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젊은 사람들부터 노인까지, 그들이 데려온 아이와 외국 여행객까지.
그래서 이 공간을 방문하면 시공간을 피해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저는 여기서 힌트를 찾으려고 합니다.

  • 수익성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으시나요? 10년간 오픈한 매장의 대다수가 성업 중인 비결이 궁금합니다.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에요.
수익이 나지 않는 공간은 기획이 잘못되었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상업 공간은 회사(사장), 직원, 손님 - 이 세 파트로 나뉠 수 있는데 어느 한 쪽이 이로우면 다른 곳에서 희생을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세 영역의 적정한 발란스를 찾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최고가 아니라 '알맞게' 만들려고 합니다.
회수가 가능한 투자금, 과하지 않고 적당한 서비스, 유지할 수 있는 공간과 서비스 디자인



14. 블로그에 공간에 대한 에피소드와 생각을 기록(상인일기)해오고 계십니다. 블로그 운영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얼마 전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을 하는 것이 끊임없이 세상과 사람들과 연결되는 일인데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던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 '리퀴드유니온'이라는 이름의 창업 컨설팅 회사도 운영 중입니다. '자립적 참상인을 만든다'의 '자립적 참상인'이란 무슨 뜻인가요? 리퀴드유니온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다른 원고를 쓰다가 참상인이라는 말을 정의해 보았습니다.
직업윤리를 갖추고 있고,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일하며, 손님을 기적으로 여기고, 이윤을 남기는 사람저희 회사 같은 곳에서 시작을 잠시 도와줄 수는 있지만 중요한 건 이후로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컨설팅을 할 때도 저희가 일방적으로 제시하거나 알려주는 방식이 아닌 창업의 전 과정에 참여시켜서함께 진행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로의 입장에서 배운 것들을 공유하며 성장하는 것이 지향점입니다.



16. 현현의 조직 구성과 문화가 궁금합니다. 일하는 방식에 있어 독특한 점이 있다면요.
마치 대학병원이나 방송국처럼 관리자들이나 사무실 직원들이 매장 실무를 겸하는 점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매장이나 현장 사정을 반영하지 않은 엉뚱한 기획을 하는 일이 적고 커뮤니케이션의 순도도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7. 대표님에게 있어 '인생의 단맛'은 무엇인가요?
제가 등산을 좋아하는데요. 산을 오르는 행위는 힘들지만 산을 올라야지만 마주할 수 있는 장면과 아름다운 풍경이 있습니다.식은 땀 위로 흐르는 바람, 산행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처럼요. 그런게 인생의 단맛으로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요.









위 내용은 폴인 인터뷰 전 진행했던 서문 인터뷰 입니다.
인터뷰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  https://www.folin.co/article/5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