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날짜 : 2024.10.10
  • 인터뷰 장소 : 수도원
  • 인터뷰이 : 소년 (수도원 점장님)
  • 인터뷰어 : 혜화 (md)
  • 촬영: 니퍼 (디자이너)





  ✦ 안녕하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열심히 잘 지내고 있다. 4월 초에 수도원으로 이동이 있어서 처음에는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현현은 어느 매장이든 좋은 분들이 계셔서 잘 적응 중이다.


  ✦ 현현이 첫 직장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음악과 공연을 좋아해서 첫 직장은 음반사. 2005년에 첫 직장 합격 통보를 받았고, 취직하면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예전부터 음악쪽 일을 해보고 싶어서 간 곳이지만 좋아하는 것과 일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 시절 PC방을 너무 좋아했는데, 거기서 게임을 하는 대신 인터넷 카페에 글을 쓰거나 채팅방에서 채팅을 하면서 밤을 샜다. 싸이월드도 열심히 했고. 이렇게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콘텐츠 기획도 배워보고 싶어서 다음으로 간 직장은 출판사, 여기서는 웹 기획자로 13년을 일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회사가 성북동에 사옥이 있어서 그 때 인생의 단맛도 처음 가봤다.


  ✦ 현현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연이 긴데...
기존에 다니던 직장이 어려워지면서 이직을 준비하며 육아휴직을 1년 동안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쓰고 일주일만에 코로나가 터져서 1년 동안 정말 육아만 하게 되었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하니 블로그를 해보거나, 스마트 스토어(당시 지어놓은 스토어 이름 '점선면')를 시작해보거나, 웹소설을 써볼까도 고민했다. 집 앞에 있는 카페에서 매일 열심히 무언가를 해보았으나 어떻게도 돈을 벌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카페 사장님이 채용공고를 벽에 붙이시는 것을 보고 문득 바리스타를 해볼까 고민하다가 사장님께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으나 나이 때문에 거절당했다. 그치만 사장님이 며칠 뒤에 조심스레 앞자리에 앉으시더니 작은 조언을 하나 해주셨는데, 바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보라는 것. 또 마침 집 앞에 바리스타 학원이 있었다. 그 길로 바로 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돈을 인출한 뒤에 학원 점심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담배를 한 대 피고 있었는데 문득 현재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조언을 구하는데, 현재가 현현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해보라고 제안을 해주었다. 이전부터 현재는 내가 사람 대하는 일을 하면 잘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던 것도 떠올랐다. 며칠 뒤에 다시 현재에게 연락이 와서 커피만 판매하는 곳은 지금 자리가 없지만, 커피와 술을 고루 판매하는 곳에서 일해도 괜찮다면 '이경현'이라는 사람 (당시 총괄매니저 - 사자) 과 협의를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사자와 만나고 현현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또 마침 독일주택에 결원이 생겨서 5일 직원으로 독일주택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현현과의 인연, 타이밍이 계획한 것처럼 정말 절묘했다. 독일주택 한옥 안에 보호하며 숨겨준 느낌. 고마운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사자가 퇴사할 때 눈물이 왈칵 쏟아진 것도 그 때 사자가 너무 잘해주어서.


  ✦ 현현에서 일하시며 느끼는 점은?
변화무쌍.
처음 1년은 쟁반 드는 것도 어려워서 집에서도 연습하고, 커피도 처음 내려보는 거라 무척 어색했다. 쿠로와(오무사 사장님)가 와서 핸드드립 하는 것을 보고 반해서 그것도 따라하려 해보고. (잘 되지는 않았다) 여튼 1년 동안은 배우느라 바빴다. 그러다 오랜만에 현재를 만났는데 '소년은 요식업 사장님이 되면 정말 잘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2년차가 되었을 때는 점장이 되기도 했으니 '내 가게를 운영하는 생각으로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때 당시 독일주택이 매출도 잘 나왔고, 사장님이 되는 미래를 꿈꾸면서 했는데 몇 달 뒤 매출이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중간정산으로 0 테이블, 0 매출을 올리기는 정말 힘들었다. 그러다 올 초에 독일주택 근무자들도 많이 바뀌고 적응하려는 찰나에 수도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 시기도 기가 막혔던 것 같다. '아무리 즐겁고 재밌게 일하는 사람도 2년이 지나면 지루하거나 힘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 정확하다.


  ✦ 독일주택 점장님으로 계시다가 수도원 점장님이 되셨는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다들 수도원에 가면 훨씬 정중하게 격식을 갖춰야된다는 말을 많이 해서 걱정을 했다. 와서 보니 정말 다르다!
독일주택의 손님은 대체로 밝고, 직원들은 홀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CCTV를 온종일 봐야 한다. 그래서 약간 시트콤을 보는 느낌이랄까? 워낙 사람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오해를 종종 받는데.. 독일주택에서는 다양한 손님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수도원에서는 조용히 얘기해야 하고 (내가 목소리가 원래 좀 큰 편이기도 하다), 테이블에 잔 하나를 놓을 때도 소리나지 않게 살살, 초도 활활 타고 있어서 조심스럽다. 결정적으로 손님들은 바에 있는 직원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직원들끼리는 우리가 NPC나 병풍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인터스텔라의 다른 차원에 각자 존재하는 느낌(ㅋㅋ) 정작 손님들은 자리에 앉으면 처음에는 어두워서 불편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촛불을 사이에 둔 너와 나'만 보여서 만족도가 높다고.


  ✦ 또 근무해보고 싶거나 궁금한 매장이 있을까요?
(질문이 무섭다.. 잘못 대답했다가 어디로 갑자기 발령나는거 아닙니까?)
어디나 배울 점이 있다는 건 같겠지만 마당과 대나무숲이 있는 지상에서 일을 해봤고, 한 줄기 햇빛이 소중한 지하에서도 일을 해봤으니, 다음에 일을 한다면? 텅에서 일하는 우리(텅 비어있는삶 점장님)가 떠올랐다. 7층 높이에서 일해본다면 어떨까? 지상과 지하, 그 다음은 하늘에서 일해보고 싶다.


  ✦ 일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손님이나 순간이 있을까요?
손님의 외모나 사건보다는 손님이 내가 일하는 공간에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독일주택에서는 어떤 젊은 커플이 자기 할아버지의 집이었다고 하며 찾아온 적이 있다. 화장실 위는 고추밭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손님은 독일주택의 자주방에서 청년시절 세 들어살던 분이 오셨는데, '이 골목의 모든 것이 변했는데 이 집만 그대로 인 것 같다'고 하셨다. 80대 할아버지셨다. 다시 찾아오시면 꼭 연락처를 받아두려고 했는데 다시 뵙지는 못했다.
수도원에서는 주로 중년 손님들이 많던 어느 날 젊은 남자 손님 세 분이 바에 앉으셨는데 (편견이 조금 있어서 소주 마실 것 같은 청년들이 수도원에 잘못 들어온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첫 잔으로 로슈포르10 3병을 주문하셨다(!). 그런데 마치 의식을 치르듯이 빈 잔에 맥주를 따르기 전에 '맛있는 맥주~' 라고 말한 뒤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맥주를 마셨다. 다음으로는 카르멜리엇 3병, 마지막에도 또다른 수도원 맥주를 3병 주문했다. 마실 때마다 '맛있는 맥주~' 를 외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가신 세 손님.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다시 오신다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 일하며 지칠 때 환기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
늘 똑같다. 프랩을 합니다. 너무 좋아요 프랩이. 특히 치즈 프랩할 때 나도 모르게 입술을 앙 깨문다. 독일주택에서는 스모크 치즈, 수도원에서는 브라운 치즈 프랩에 진심이다. 제일 만족하는 소분 사이즈를 찾았다. 그런데 그 크기대로 하면 한 플레이트에 올라가는 양이 많아져서 소분할 때마다 4알씩 남겨둔 뒤 그걸 모아서 한 세트를 만들곤 한다.
그리고 가끔 매장에서 많이 힘든 일이 있으면 주방에 들어가서 양장살라미를 써는 톱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ㅋㅋ) 신지(수도원 매니저님)가 '톱칼은 누가 왜 썼지?' 라고 물은 적이 있다.


  ✦ 요즘 즐겨들으시는 노동요는?
수도원 음악은 힘들어요. (다만 수도원 플레이리스트를 싫어하는 것이 절대 아니고 덕분에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
요즘엔 단편선에 푹 빠졌고 최근에 '순간들'이라는 프로젝트 밴드가 나와서 그 음악과 이민휘를 정말 많이 듣늗다. 거의 그렇게 두 가지를 매일 번갈아가며 듣는다. 가끔 마감 이후 혼자 남는 시간이 있으면 '이민휘의 푸른꽃' 이라는 연주곡을 튼다. 수도원 스피커로 크게 듣고 있으면 날개가 달리는 느낌이다. 고해성사를 하고 용서받는 느낌?
곡으로 꼽자면 단편선의 아내, 이민휘의 푸른꽃, Mateo Stoneman의 Llamame (수도원 리스트에도 있어서 일하다가도 이 노래가 나오면 완전 집중해서 듣고 감동받는 곡)


  ✦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무엇인가요? (현현 전체 매장 중)
현현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생제르망!
그치만 가게마다 먹고 싶은 메뉴들이 있지요.  독일에는 레드에일, 수도원에는 카르멜리엇, 텅에는 호지라떼, 필로소피라운지에는 아드벡 우거다일(최고 맛있는 위스키), 법원에는 법원패션드.. 헌술방에는 최백호 패션드...
요즘 술이 늘고 있다.


  ✦ 업무 외에 요즘 삶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육아. 요즘 아이들이 사춘기가 와서, 업무 하면서도 신경쓰이는 것이 계속 생긴다. 최근에는 '아빠 직업을 뭐라고 말해야 돼?' 라고 물어봐서 '바텐더 겸 점장' (바텐더를 꼭 먼저!) 이라고 말해줬더니 '오!'라고 했다.


  ✦ 끝으로 현현 동료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자주 볼 수도 없고 바빠서 서로 연락도 못 하지만 어떻게 사는지는 주문하는 것만 봐도, 질문하는 것만 봐도 대충 아니까..
각자 공간에서 현현하게 삽시다.


  ✦ (돌발!) 현현으로 이행시 부탁드립니다.
(삼행시 이행시 대회에서 상을 여러 번 타셨다고 들어서 요청해봤습니다)
앗 너무 어려워요, 제가 삼행시 많이 해봐서 아는데... 그런건 다 밤새서 지은건데.. 특히 현 자가 어려워요. 아 오픈해야 되는데...

현현을 위한 버전,
현 : 현현에서 저는
현 : 현재 행복합니다.

장난 버전은,
현 : 현정아 고마워
현 : 현정아 사랑해 (아내 이름이 현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