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단맛


작은 성취는 사람을 바꾼다.

부족한 창업 자금으로(1,700만 원) 구할 수 있는 매장이 제한적.
700만 원의 인테리어 비용 중 지하에 화장실을 만드는데 200만 원 지출. (손님을 위해서)
테이블과 가구는 중고나라에서 무료 나눔과 저렴한 제품들로 구성.
지나가는 손님들이 호기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입구에 신경을 썼다.
낮은 임대료 1000/30 가 마음을 편하게 했다.
창의적 칵테일을 컨셉으로 조금 부족하더라도 재밌고 건전하고 부담 없는 바를 만들자. (한결같은 맘, 한결같지 않은 맛!)
서서히 소문나면서 근처 대학과 동네 주민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함.
노후로 인해서 2018년 리모델링 공사.
함께 일하던 매니저가 2020년에 인수해서 운영 중.
2022년 10주년 파티를 함🥳




2012년 6월 개업 ~ 영업 중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로5가길 지하 1층
46.52m(14평)


바닥에서 시작할 각오는 있었으나 지하일 줄은 몰랐다.








위플래시의 모티브가 된 드럼 학원

문어 대가리가 당신의 나태함을 후드려 팬다🐙 - 위플래시 왓챠 한줄평

포토샵으로 렌더링해 본 이미지

 개업 전 날 달았던 돌고래

<상담실> - 여기서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무덤까지 가져갈 것이다.



 <애인의 애인>
<물방울의 신>
<창원 남친> 기계공업 도시를 표현했다.

포스기 살 돈도 아꼈다.
손님들에게 틀어주던 비디오 테잎

개업 전 상상했던 가게의 모습

인생의단맛 샵인샵 효리식당. 이후에 방배동으로 옮겨 개업했다.

<인생의 단맛 조직도>

당시의 마음
손님이 쓴 하이쿠


2012년 첫 만석의 떨리던 순간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던 시절

바텐더, 늘 마시던 걸로.




⬆️ 개업 당시의 메뉴판 이미지. 


현금을 좋아하던 캐시

<짜계치(인생을 걸었다)> 
 <파멸의 파스타(파,멸치)>

매일 고열량 스탭밀을 만들어 먹었다.


단골에서 매니저, 매니저에서 두번째 사장님


가게가 낡아 필연적으로 선택하게 된 리뉴얼





 

상인일기 1부

2012년 5월 31일
아버지 신용으로 은행에서 2천만 원을 빌리고 가게를 얻었다. 명륜동 후미진 골목에 있는 14평 지하 드럼 연습소 자리.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 권리금 無.
1년 넘게 서울에 여러 곳을 둘러봤지만 유일하게 이 자리만 나에게 곁을 허락하는 느낌이 든다. 다른 곳들은 모두 '이 봐 애송이 여긴 자네가 발 붙일 곳이 아니야'라고 겁박하는 것 같았다. 잘 모르는 동네지만 여기서는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출 보증서는 일 때문에 통화할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사진은 이제 아주 관둔 거냐? 네 나이가 몇인 줄 아니?
내 나이는 늘 아버지 앞에만 서면 부끄러웠다. 사진을 시작하던 28살에도, 긴 여행을 떠났던 31살에도. 장사를 시작하는 지금도.
엄마에게 3백만 원을 빌려주고 철거와 화장실 공사, 집기를 구입하는데 5백만 원 정도를 사용했다. 지하에 새로 화장실을 만드느라 돈이 많이 들었다. 테이블과 의자는 중고나라에서 무료로 주는 것들을 받아왔다. 통장에 남은 돈은 80만 원 남짓. 개업 첫날 식자재 살 돈이 없어 신문사 정기 구독 신청하고 현금 9만 원 받아서 장사했다는 P형보다는 낫네. 그래 내 처지가 조금 더 낫다.
내일이면 개업이다.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시작하려고 했는데 한 달이나 늦어졌다.
나는 더는 물러설 곳도 내려갈 곳도 없다.
아주 조금 비장한 감정이 드는 것 말고는 괜찮은 것 같다.
5년 뒤쯤이면 나는 망해 있을까? 아니면 괴물이 되어있으려나.

상인일기라는 블로그를 만들고 여기까지 쓰고 다음 일기를 쓰기까지 8년 7개월이 지났다.
바빴다. 너무 바빴다. 마음의 여유도 없고 글을 쓸 에너지도 없었다. 다행히 나는 아직 망하지 않았고 가게도 몇 개 더 늘었다. 괴물은? 잘 모르겠다.
매일 기록을 하겠다는 생각은 초보 상인의 낭만적인 발상이었다.
일반음식점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구청에서 진행하는 위생교육을 8시간 들어야 하는데 1교시 수업이 생각난다.
"시작부터 이런 얘기 해서 죄송하지만 팩트 하나만 말씀드리고 수업 진행할게요. 오늘 여기 몇 분 모이신 줄 아세요? 600명입니다. 저희 종로구청에서만 일주일에 두 번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어마어마하겠죠. 여기 계신 분들 중에 90%는 5년 안에 폐업을 하게 됩니다. 나머지 분들도 다시 5년 후에는 같은 비율로 폐업을 하고요."
강사가 미친 거 아닌가. 왜 저런 말을 하지. 자기 수업에 졸지 말고 휴대폰 못 보게 하려는 생각이었다면 - 성공이다.
갑자기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꼬았던 다리를 풀고 한쪽 귀에만 꽂았던 이어폰을 뺐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는 사람 중에 자신이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보다 적은 돈으로 창업을 하는 사람은 있을까?
바에서 일해 본 적도 없으면서 바를 여는 사람은?

지금은 현재 하는 일이 살면서 가장 오래 한 직업이 되었다.
그전에는 배달원 생활을 8년 사진은 7년 정도 찍었다.
장사하기 전 나의 직업은 포토그래퍼였다. 처음 일했던 강남의 모 스튜디오에서 면접 보던 날이 생각난다. 열심히 준비한 포트폴리오를 대충 보고서 실장님이 질문했다.
사진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고 대답했다.
"서비스업이요. 사진을 찍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니까요."
합격!
나중에 들은 말이었는데 예술이나 철학, 커뮤니케이션 같은 말을 했으면 떨어트릴 생각이었단다. 지금 생각해 봐도 특이한 답변이긴 한 것 같다.
그래, 어쩌면 나는 참상인으로 태어난 게 아닐까?

<다음호에 계속>


상인일기 2부

처음은 국수였다. 뚝배기된장바지락칼국수. 집에서 자주 해 먹던 음식이었는데 주위 반응이 좋았다.
단일 메뉴이고 창업비도 적게 들것이라는 점도 안심이 됐다.
레시피를 다듬기 위해 한 달 정도 전국의 이런저런 된장으로 테스트를 하다가 그만두었다.
사업은 가급적 오랫동안 소 등 위에 있어야 하는 로데오 경기 같은 것인데, 매일 12시간씩 한 가지 음식만 만들 생각을 하니 지겨울 것 같았다.
있지도 않은 가게가 벌써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니야, 손님을 찾아 내가 움직이면서 할 수 있는 푸드 트럭을 하자.
메뉴를 고로케로 바꾸고 상호도 미리 지었다. 동키 코로케.
작은 봉고차를 중고로 구입해 노란색으로 칠하면 귀여울 것 같았다.
집에서 열심히 고로케 튀기는 연습을 하다가 역시나 할 달 만에 그만두었다.
당시에는 푸드 트럭이 합법이 아니어서 제약이 많았다. 구르마 닷컴이라는 곳에서 여러 정보를 접하다 보니 목 좋은 곳은 전부 자릿세가 있고 그런 게 없어도 텃세가 심하다고 했다.
자리 때문에 상인들끼리 싸우는 일도 허다했다. 단속을 피해 다니면서 동종 상인들끼리 다툴 생각을 하니 창업할 마음이 싹 가셨다.
냄새도 문제였다.
기름의 미립자들이 모공 속에 스며들어 친구들이 나만 만나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샤워나 목욕 같은 거로는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고로케 만들기를 그만두고 몇 달이 지나서야 냄새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때부터였다. 즐겁기만 했던 창업의 과정이 불안감으로 변한 게.
자신만만한 쾌속정이었는데 난파한 돛단배 모습으로 전락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이런 고민에 빠져있을 때쯤 난생처음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바다는 동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제주도의 바다는 또 달랐다.
잡지에서 보던 지중해식 블루. 이국적인 풍경과 서울과는 다르게 흐르는 시간.
제주도를 다녀와서 며칠 제주 앓이를 했다.
그러다가 집에서 제주도에서 보았던 바다를 칵테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냥 만들면 재미없으니 한라산 소주를 사용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서울에 한라산 소주를 파는 곳이 거의 없어서 주류 도매상과 수협까지 연락했다.
푸른색을 내는 블루퀴라소라는 리큐어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각얼음을 수건에 넣고 절구 방망이로 잘게 깨트리고 레몬과 사이다를 곁들였더니,
와! 색도 곱고 맛도 있었다.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해줬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협재의 바다 색깔을 표현한 칵테일이었으나 모슬포 블루라고 이름 지었다.
일단 이름은 예쁘고 봐야할 것이 아닌가?
이어서 고향의 울산 방어진 바다를 표현한 방어진 블루도 만들었다.
협재의 바다가 아쿠아 블루라면 방어진은 코발트 블루에 가까웠다. 검푸른 바다색을 표현하기 위해 레시피를 사이다에서 콜라로 바꾸고 조선소가 많은 바다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서 올리브 오일도 몇 방울 띄었다.
친구들은 거친 조선소 사내들이 연상된다며 극찬했다.
무엇보다 만드는 내가 즐거웠다.
그래 창의적 칵테일을 만드는 칵테일 바를 하자.
오래 전에 지어 두었던 인생의 단맛이란 꼭 맞는 상호도 있었다.
단숨에 칵테일 이름을 백개 정도 지었다. 레시피는 영업하면서 하나씩 만들어 가면 될 일이다.
지나치게 완벽을 기하는 일은 이슬비 내리는데 고어텍스 재킷을 입고 산책을 나서는 일과 같다.
조준하고 쏘지말고, 쏘고나서 조준 하자.

<다음 호에 계속>
'상인일기' 레시피

재료
손님이 남긴 술 50ml
맥주 적당히
진저엘 50ml
라임즙 5ml
체리 가니쉬(없어도 무방)

모든 재료를 맥주잔에 순서대로 붓는다.
단숨에 마시고 가게 마감을 한다.
내일은 더 나을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