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일기 2부



처음은 국수였다. 뚝배기된장바지락칼국수. 집에서 자주 해 먹던 음식이었는데 주위 반응이 좋았다.
단일 메뉴이고 창업비도 적게 들것이라는 점도 안심이 됐다.
레시피를 다듬기 위해 한 달 정도 전국의 이런저런 된장으로 테스트를 하다가 그만두었다.
사업은 가급적 오랫동안 소 등 위에 있어야 하는 로데오 경기 같은 것인데, 매일 12시간씩 한 가지 음식만 만들 생각을 하니 지겨울 것 같았다.
있지도 않은 가게가 벌써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니야, 손님을 찾아 내가 움직이면서 할 수 있는 푸드 트럭을 하자.
메뉴를 고로케로 바꾸고 상호도 미리 지었다. 동키 코로케.
작은 봉고차를 중고로 구입해 노란색으로 칠하면 귀여울 것 같았다.
집에서 열심히 고로케 튀기는 연습을 하다가 역시나 할 달 만에 그만두었다.
당시에는 푸드 트럭이 합법이 아니어서 제약이 많았다. 구르마 닷컴이라는 곳에서 여러 정보를 접하다 보니 목 좋은 곳은 전부 자릿세가 있고 그런 게 없어도 텃세가 심하다고 했다.
자리 때문에 상인들끼리 싸우는 일도 허다했다. 단속을 피해 다니면서 동종 상인들끼리 다툴 생각을 하니 창업할 마음이 싹 가셨다.
냄새도 문제였다.
기름의 미립자들이 모공 속에 스며들어 친구들이 나만 만나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샤워나 목욕 같은 거로는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고로케 만들기를 그만두고 몇 달이 지나서야 냄새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때부터였다. 즐겁기만 했던 창업의 과정이 불안감으로 변한 게.
자신만만한 쾌속정이었는데 난파한 돛단배 모습으로 전락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이런 고민에 빠져있을 때쯤 난생처음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바다는 동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제주도의 바다는 또 달랐다.
잡지에서 보던 지중해식 블루. 이국적인 풍경과 서울과는 다르게 흐르는 시간.
제주도를 다녀와서 며칠 제주 앓이를 했다.
그러다가 집에서 제주도에서 보았던 바다를 칵테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냥 만들면 재미없으니 한라산 소주를 사용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서울에 한라산 소주를 파는 곳이 거의 없어서 주류 도매상과 수협까지 연락했다.
푸른색을 내는 블루퀴라소라는 리큐어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각얼음을 수건에 넣고 절구 방망이로 잘게 깨트리고 레몬과 사이다를 곁들였더니,와! 색도 곱고 맛도 있었다.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해줬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협재의 바다 색깔을 표현한 칵테일이었으나 모슬포 블루라고 이름 지었다.
일단 이름은 예쁘고 봐야할 것이 아닌가?
이어서 고향의 울산 방어진 바다를 표현한 방어진 블루도 만들었다.
협재의 바다가 아쿠아 블루라면 방어진은 코발트 블루에 가까웠다. 검푸른 바다색을 표현하기 위해 레시피를 사이다에서 콜라로 바꾸고 조선소가 많은 바다의디테일을 살리기 위해서 올리브 오일도 몇 방울 띄었다.
친구들은 거친 조선소 사내들이 연상된다며 극찬했다.
무엇보다 만드는 내가 즐거웠다.그래 창의적 칵테일을 만드는 칵테일 바를 하자.
오래 전에 지어 두었던 인생의 단맛이란 꼭 맞는 상호도 있었다.
단숨에 칵테일 이름을 백개 정도 지었다. 레시피는 영업하면서 하나씩 만들어 가면 될 일이다.
지나치게 완벽을 기하는 일은 이슬비 내리는데 고어텍스 재킷을 입고 산책을 나서는 일과 같다.
조준하고 쏘지말고, 쏘고나서 조준 하자.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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