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일기 1부



2012년 5월 31일
아버지 신용으로 은행에서 2천만 원을 빌리고 가게를 얻었다. 명륜동 후미진 골목에 있는 14평 지하 드럼 연습소 자리.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 권리금 無.1년 넘게 서울에 여러 곳을 둘러봤지만 유일하게 이 자리만 나에게 곁을 허락하는 느낌이 든다. 다른 곳들은 모두 '이 봐 애송이 여긴 자네가 발 붙일 곳이 아니야'라고 겁박하는 것 같았다. 잘 모르는 동네지만 여기서는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출 보증서는 일 때문에 통화할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사진은 이제 아주 관둔 거냐? 네 나이가 몇인 줄 아니?
내 나이는 늘 아버지 앞에만 서면 부끄러웠다. 사진을 시작하던 28살에도, 긴 여행을 떠났던 31살에도. 장사를 시작하는 지금도.
엄마에게 3백만 원을 빌려주고 철거와 화장실 공사, 집기를 구입하는데 5백만 원 정도를 사용했다. 지하에 새로 화장실을 만드느라 돈이 많이 들었다. 테이블과 의자는 중고나라에서 무료로 주는 것들을 받아왔다. 통장에 남은 돈은 80만 원 남짓. 개업 첫날 식자재 살 돈이 없어 신문사 정기 구독 신청하고 현금 9만 원 받아서 장사했다는 P형보다는 낫네. 그래 내 처지가 조금 더 낫다.
내일이면 개업이다.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시작하려고 했는데 한 달이나 늦어졌다.
나는 더는 물러설 곳도 내려갈 곳도 없다.
아주 조금 비장한 감정이 드는 것 말고는 괜찮은 것 같다.
5년 뒤쯤이면 나는 망해 있을까? 아니면 괴물이 되어있으려나.

상인일기라는 블로그를 만들고 여기까지 쓰고 다음 일기를 쓰기까지 8년 7개월이 지났다.
바빴다. 너무 바빴다. 마음의 여유도 없고 글을 쓸 에너지도 없었다. 다행히 나는 아직 망하지 않았고 가게도 몇 개 더 늘었다. 괴물은? 잘 모르겠다.
매일 기록을 하겠다는 생각은 초보 상인의 낭만적인 발상이었다.
일반음식점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구청에서 진행하는 위생교육을 8시간 들어야 하는데 1교시 수업이 생각난다.
"시작부터 이런 얘기 해서 죄송하지만 팩트 하나만 말씀드리고 수업 진행할게요. 오늘 여기 몇 분 모이신 줄 아세요? 600명입니다. 저희 종로구청에서만 일주일에  두 번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어마어마하겠죠. 여기 계신 분들 중에 90%는 5년 안에 폐업을 하게 됩니다. 나머지 분들도 다시 5년 후에는 같은 비율로 폐업을 하고요."
강사가 미친 거 아닌가. 왜 저런 말을 하지. 자기 수업에 졸지 말고 휴대폰 못 보게 하려는 생각이었다면 - 성공이다.
갑자기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꼬았던 다리를 풀고 한쪽 귀에만 꽂았던 이어폰을 뺐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는 사람 중에 자신이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보다 적은 돈으로 창업을 하는 사람은 있을까?
바에서 일해 본 적도 없으면서 바를 여는 사람은?

지금은 현재 하는 일이 살면서 가장 오래 한 직업이 되었다.
그전에는 배달원 생활을 8년 사진은 7년 정도 찍었다.
장사하기 전 나의 직업은 포토그래퍼였다. 처음 일했던 강남의 모 스튜디오에서 면접 보던 날이 생각난다. 열심히 준비한 포트폴리오를 대충 보고서 실장님이 질문했다.
사진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고 대답했다.
"서비스업이요. 사진을 찍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니까요."
합격!
나중에 들은 말이었는데 예술이나 철학, 커뮤니케이션 같은 말을 했으면 떨어트릴 생각이었단다. 지금 생각해 봐도 특이한 답변이긴 한 것 같다.
그래, 어쩌면 나는 참상인으로 태어난 게 아닐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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