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등처럼 둘이서 가라
사장님 혹시 아르바이트생 필요하지 않으세요?
늘 검은색 페도라를 쓰고 콧수염을 기르는 단골손님이 어느 날 물었다.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이었다.
아직은 혼자 할만해요.
몇달이 지나고 가게의 손님이 조금 더 늘었을 때쯤 페도라 손님이 다시 물었다.
사장님 혼자 일하시기에 바빠 보이시는데 사람 필요하지 않으세요?
단골손님을 잃고 싶지 않았던 나는 급하게 사업 원칙을 만들어 냈다.
저는 손님하고는 일하지 않습니다.
그 손님은 인근 대학의 한문교육학과 학생이었는데 글래스톤베리에 초대되었던 밴드의 드러머이기도 했다. 여자 친구랑 자주 와서 비싼 맥주를 팔아주는 몇 안 되는 손님이었다. 매너도 좋아서 바에 앉아 있으면 내 마음도 편안했다.
거절을 하고 며칠이 안돼서 가게에 손님이 확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쁜 일이었지만 재앙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초보 사장이었던 나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예전에 받아둔 번호로 페도라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아직도 일할 생각 있나요?
원칙에 관해서 물으면 원칙을 어길 만큼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할 예정이었다.
네 사장님, 언제부터 출근할까요?
제발 내일부터 나와 주세요.
그 친구가 첫 출근했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외투를 벗고 바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내가 말했다.
이 안에 들어오는 순간 이제 손님 아니고 형 동생으로 지내는 거다.
손님으로 오래 봐 왔던 터라 처음에 말을 놓지 않으면 일하기가 어색할 것 같아서 준비한 대사였다.
뒤죽박죽이었던 지나온 시간들을 다림질로 평평하게 펼쳐보니, 그 친구가 바 안으로 들어왔던 찰나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다.
그 친구가 들어오고 나서는 일 하는 게 한결 수월했다. 유머는 없었지만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사람들한테 깍듯했다. 나이는 열 살 어렸지만 나보다 나은 사람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친구가 내게 자주 했던 말이 생각난다.
형 먼저 들어가세요. 제가 마무리하고 가겠습니다.
형 오랜만에 친구들 오셨는데 먼저 퇴근하세요. 이 정도는 저 혼자서도 마감할 수 있습니다.
휴일 없이 밤낮으로 일하는 작은 가게 사장에게 이렇게 위무가 되는 말이 있을까?
어떤 회사건 사장처럼 일하는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어도 그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런 직원은 반드시 독립해서 사장이 된다.
세상의 비밀 하나를 알고 있던 나는 함께 일한 지 반년쯤 됐을 때 프로포즈를 했다. 대부의 돈 꼴레오네 처럼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어야 했다.
나하고 108번의 성공을 같이하지 않을래?(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형 조금 더 고민해 보고 답해도 될까요?
일한 지 정확히 1년 째 되던 날 그 친구에게서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편지는 소중하게 보관 중이다.)
'문득 형과의 인연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더불어 인생의 단맛이라는 공간과 명륜동. 그리고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보낸 시간들에 대해서도요.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보면, 매 하루가 정말 꽉 차 있고 소중해서 찰나의 순간도 놓치기 싫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살면서 정말 오랜만에 흘러간 시간에 대해서 충만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 1년은 형한테도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겠죠. 그 의미있는 시공간에 형과 제가 조금이나마 함께 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합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13번째의 성공을 함께 준비 중이다.
참고로 그 친구의 별자리는 염소자리인데 나는 이후로 염소자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생겼다.
내가 총알받이처럼 가장 앞서 달려 나가는 산양이라면(양자리), 그 친구는 절벽 끝까지 기어 올라가고야 마는 흑염소이다.
함께 만든 회사의 이름은 '현현'인데 가까운 사람들은 혹시 덕현이와 경현이어서 현현이냐고 묻는다.
당연히 그 뜻은 아니지만 그냥 씨익 웃고 만다.
인생에 파트너가 생기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낙타의 등처럼 둘이서 가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만큼 어렵지만, 낙타는 결코 따로 울지 않는다.
'낙타의 등처럼 둘이서 가라' 레시피
<재료>
스카치 캔디 1개
아마레또 30ml
깔루아 30ml
스카치 캔디를 깨물어 부숴 먹는다.입안에 사탕이 남아있을 때 한 입에 마신다.
<재료>
스카치 캔디 1개
아마레또 30ml
깔루아 30ml
스카치 캔디를 깨물어 부숴 먹는다.입안에 사탕이 남아있을 때 한 입에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