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안팎





1. 독일주택부터 텅 비어있는 삶까지, 현현이 만들어낸 공간들은 모두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만 그 공간을 만드는 주체는 늘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많은 사람이 안성탕면을 좋아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거나 관심 없는 것처럼 좋은 서비스나 제품으로만 선택되고 싶었습니다. 마치 블라인드 테스트로 선택된 와인처럼 말이죠. 회사 구성원들 중에 아웃사이더와 내향인이 많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2. 주식회사 현현의 웹사이트 소개 페이지에는  <밝고 분명하게, 깊고 심오하게>라는 문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현묘하고 심오하다는 뜻일까?
조직에 대한 오래된 불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회사를 만들었을 때 이 조직이 밝고 분명하기를 바랐어요. 그러면서도 '현현하다'라는 문장처럼 쉽게 정의 될 수 없는 현묘함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3. 현현이 만들어낸 공간들은’ 잘 셋팅된 핫플’이라기보다는 현현 다운 '취향'이 반영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을 브랜딩 하거나 만들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부분이 있는가?
장소성과 고유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하면 이곳에 무엇이 있으면 자연스럽고 어울릴까? 무엇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런 고민으로 시작해요. 말하기 보다는 응답하기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4. 종종 사람들은 퇴근 후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길 나누곤 한다. '나도 퇴사하고 카페나 하나 차릴까?' 참상인으로서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서비스업의 현실과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줄 수 있나?
최근에 리퀴드유니온 프로젝트를 창업 컨설팅에서 자신의 일자리 만들기 프로젝트로 재정의했습니다. 저는 삶에서 일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거나 원하는 조직에 몸담을 수 없다면 그때가 창업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직장 생활은 고성과자가 아니어도 어떻게든 다닐 수 있지만 서비스업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유지할 수가 없다는 점이 어렵습니다. 빠르게 변하고 경쟁이 매우 치열해요.




5. 현현의 첫 가게, 인생의 단맛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 첫 마음, 첫 시작, 첫 손님 같은.
제가 가지고 있었던 제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곳에 오는 그 누구도 서운하게 보내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었어요. 오늘도 성심으로!




6. 술을 좋아하는 편인가? 현현의 공간들은 술로 시작해서 술로 이어지는 술의 세계다. 컨설팅 프로젝트 ‘리퀴드 유니온’도 마치 자연스럽게 이어진 강물 같다.
창업할 당시에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는데 지금은 다양한 술을 좋아합니다. 리퀴드 유니온이라는 이름도 첫 가게를 운영하던 당시에 직원들이랑 쓰던 단톡방 이름이었어요. 이 일을 하면서 우리가 이음새 없는 물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7. 인생의 단맛 칵테일 이름은 독특하다. 피식 웃기기도 하고 일편 문학적이기도 한데, 탄생 비화를 들려줄 수 있나?
제주도를 다녀와서 모슬포 블루라는 생애 첫 창의적 칵테일을 만들고 재밌어서 단숨에 칵테일 이름만 100개 정도 지었습니다. 영업 첫날에는 두 가지만 주문이 가능했지만 점차 레시피들이 생겼어요. 오랫동안 문학을 좋아했는데 무용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제 삶을 구원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8. 현현의 공간들은 혜화동을 중심으로 대체로 그 근처에 포진되어 있다. 취향의 동네라고 봐도 무방할까?
처지와 우연이 낳은 결과예요. 조용한 곳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창업을 준비하던 당시에는 돈이 너무 없어서 1년 동안 정말 여러 곳을 다녔는데 명륜동만 저를 허락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제가 옹색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 한편 예상 밖의 명당에 자리한 텅, 비어있는 삶은 소개 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잘 못 들어간 줄 알고 잠시 당황했다. '동시성'과 텅 비어있는 삶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잠시 설명해 달라.
동시성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우연히 텅 비어있는 삶 자리를 보게 되었어요. 보자마자 이 풍경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는데 저희가 얻기에는 임대료도 높았고 수중에 돈도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 시절이라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건물주랑 대화하면서 서로 호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건물주께서 예전에 독일주택에 손님으로 방문해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계셨고 여러 번의 미팅을 통해서 임대료를 수수료 지급 방식으로 바꿔주셨고 인테리어 비용도 빌려주셨습니다. 두 달간 준비했던 인테리어 공사도 여러 이유로 백지화가 되었는데,  15년 전에 안나푸르나에서 잠시 만났던 사람이 나타나서 공사를 맡아주었습니다. 연락처도 모르고 그동안 완전히 잊고 살던 사람인데 그 즈음해서 자꾸 생각이 났어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10. 인터뷰 장소로 성북동의 헌술방을 골랐다. 현현 취향의 집결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헌술방에 대한 소개와 이야기를 들려달라.
코로나 시절 당시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면 매출도 중요하지만 구성원의 에너지도 중요하잖아요.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어서 사무실로 쓰던 5평 공간을 헌책과 이야기가 있는 와인 바틀샵으로 만들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헌책을 구하러 다니고 당근마켓에서 가구를 사고 각자 와인에 대해서 글을 쓰고, 당시에는 매거진의 에디터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그때의 매출이 코로나를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됐거나 했던 건 아니지만 정말 순수하고 즐겁게 몰입했던 것 같아요. 팀웍도 좋아지고 각자의 재능도 발견하게 됐던 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책을 좋아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지금의 성북동으로 옮겨서 확장되어 운영 중이에요. 보는 순간 헌술방에 꼭 맞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1. 취향의 공간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을까? 비슷비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려면 영감이라는 명목하에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를 그만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제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상업 공간에 한해서 말해 본다면 취향이라는 말은 소비자적인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집합. 사람들은 남의 취향에 큰 관심이 없을 것 같아요. 창업을 계획하면서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싶다는 분들에게 꼭 해드리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취향보다는 만든이의 성향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12. 헌술방의 매력 중 하나는 헌책이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애정이 있는 편인가?
특별히 헌책에 애정이 있지는 않지만 오래된 것들을 좋아합니다.
가치라는 것은  쏟은 애정만큼 비례해서 생긴다고 생각해요.




13. 한편 현현을 이야기하며, 현현의 멤버들을 빼놓을 수는 없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공간과 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누구보다 현현이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작은 회사는 좋은 동료가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내세울 만한 게 그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회사의 별명을 '분위기 메이커'라고 지었는데 분위기의 완성도 결국 사람입니다.




14. 최근 오픈한 필로소피 라운지에 대해 소개한다면?
모든 것은 거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갖게 된 목적이 불분명한 거실이라는 공간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위스키&디저트 바입니다.
무의미하고 시시한 생각에 시달릴 때, 방해 없이 대화에 몰입하고 싶을 때, 충무로에 있는 필로소피 라운지를 찾아주세요.




15. 참상인의 길은 어떠한가? 걸을만 한가?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뒤돌아봤을 때 그런 길을 걸어 온 여정이길 바랍니다.




16. 술과 관련된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맨정신이 마약] - 인생의 단맛 무알콜 칵테일 이름
[나쁜 와인을 마시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 수도원 코스터에 독일어로 쓰여 있는 문장




17. 안팎 및 안팎의 구독자들에게 딱 한 가지 술을 소개해 본다면?

[그, 나, 저, 나]
인생의 단맛에서 판매하는 높은 도수의 창의적 칵테일입니다.
언어가 분열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안팎 고정 질문>
- 저희 대화에 어울릴만한 배경 음악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인터뷰 후에 결정해 주셔도 좋습니다.

[칵테일 사랑 - 마로니에]
모짜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과 고민했습니다.



- 대화에 적용할 색상 두 가지만 골라본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선호하는 컬러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컬러는 저희의 대화를 장식할 예정입니다.
모슬포 블루(#4dc6f6)와 백색









위 내용은 안팎 인터뷰 전 진행했던 서문 인터뷰 입니다.
인터뷰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  https://anpakk.kr/conversations/6